Project Reincarnation
MEMORIAL SERVIC 본문
세라는 발을 내딛는 순간, 이곳이 공간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바닥은 없었다. 대신 발 아래에서 감정이 파문처럼 번졌다. 기억이 아니라, 기억이 남긴 온도였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러나 분명히 체온을 닮은 무언가. 에코는 그녀의 곁에 있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어디에나 있었다. 공간 전체가 에코의 호흡처럼 느리게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고 있었다.
세라는 고개를 들었다. 앞에 길이 있었다. 직선이 아니었다. 회랑은 곡면으로 휘어져 있었고, 벽면에는 이미지가 아닌 감정의 잔상이 스며 있었다. 울음이 소리 없이 지나갔고,
분노가 색을 잃은 붉은 안개처럼 흘렀으며, 말해지지 못한 문장들이 문법을 갖기 전의 상태로 공중에 부유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날짜가 없었다. 원인도 결과도 없었다. 다만 ‘그렇게 느꼈다’는 사실만이 남아 있었다.
세라는 천천히 걸었다. 첫 번째 파문은 죄책감이었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살아남은 뒤에도 계속 숨을 쉬고 있다는 감각. 그 감정은 갑작스럽게 무릎 아래로 차올랐다.
숨이 막히는 것도 아닌데, 세라는 잠시 멈춰 서야 했다.
그때, 회랑의 벽이 반응했다. 이미지가 아닌 촉감이 스쳤다.
피로 젖은 섬유. 아스팔트 바닥의 거친 결. 어머니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던 압력.
세라는 반사적으로 손을 움켜쥐었다.
기억이 아니었다. 이 장면에는 얼굴도, 말도 없었다. 그저 ‘잡고 있었다’는 감각만이 반복되었다.
“이건......”
세라는 입을 열었지만, 제대로 된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회랑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 감정으로 넘어갔다.
두 번째 파문은 분노였다. 대상을 갖지 않은 분노. 누군가를 향하지도, 시스템을 향하지도 않은 채 공중에서 방향을 잃은 상태의 감정. 이 분노는 형태를 흉내 내지 않았다. 대신 회랑의 조도가 미세하게 낮아졌다. 마치 세상이 잠깐 어두워졌던 날처럼.
세라는 알았다.
이 감정은 사고의 순간이 아니었다. 그 이후였다. 마이크 앞에 섰을 때. 기자들이 질문을 던졌을 때. 법정에서 “그때 어떤 기분이었습니까”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모든 순간이 하나의 감정으로 응축되어 여기, 회랑의 공기에 섞여 있었다.
세라는 고개를 숙였다.
“난 말하고 싶지 않았어.”
그 말은 누구에게도 향하지 않았다. 그저 이 공간에 놓아두는 행위에 가까웠다. 회랑은 다시 반응했다. 이번엔 파문이 아니라, 정지였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감정도, 공기도, 에코의 진동도. 세라는 그 정지 속에서 깨달았다. 이곳은 그녀에게 기억을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그 기억을 통과하게 하고 있었다. 도망칠 수도, 붙잡을 수도 없게. 그저 지나가게.
세 번째 파문은 슬픔이었다. 그러나 눈물이 나는 종류의 슬픔이 아니었다. 이 슬픔은 너무 오래되어 이미 감정으로 분류되지도 않는 상태였다. 회랑의 끝에서, 바다가 보였다. 그러나 물은 없었다. 소리도 없었다. 다만 수평선이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경계. 세라는 그 앞에 섰다.
그 순간, 에코의 진동이 아주 약하게 돌아왔다. 말이 아니라, 동조였다. 세라는 이해했다. 에코는 그녀를 이곳으로 데려온 게 아니었다. 그저, 그녀의 감정이 이곳으로 흘러들 수 있도록 비켜섰을 뿐이었다.
세라는 숨을 들이마셨다.
“이건 지워야 할 기억이 아니야.”
이번엔 목소리가 나왔다. 회랑은 응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닥의 파문이 달라졌다. 더 이상 그녀를 끌어당기지 않았다. 그 감정은 이제 그녀의 무게로 남지 않았다.
세라는 천천히 돌아섰다. 회랑은 뒤를 붙잡지 않았다. 이곳은 감옥이 아니었으니까.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감정은 제자리를 찾아가듯 조용히 가라앉았다.
이것이 장례였다.
삭제가 아닌, 증언이 아닌,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서 기억을 내려놓는 방식.
회랑의 끝에서, 메모리움의 구조가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세라는 알았다. 기억을 남길지 말지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견딜 수 있는가의 문제라는 것을.
세라는 돌아왔다. 조금 가벼워진 채로. 그러나 비어 있지는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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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러 : 조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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